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일전쟁/오해와 편견 (문단 편집) == 중국군의 분투와 악조건 == 그나마 기존에 꾸린 병력으로 장제스를 중심으로 한 중국군은 강렬한 항일 의지를 가지고 일본군에 제법 타격을 주었다. [[장쉐량]]이 [[만주]]와 [[화북]]의 지배권을 놓고 찌질대다가 [[만주]]를 통째로 날려먹은 전례에 비하면 엄청나게 양반이다. 전쟁 중 중국군은 거의 매 전투마다 엄청난 사상자를 냈다고 폄하하는 의견들도 있지만, 그 전의 중국군은 엄청난 사상자를 낼 정도로 싸우지도 못하는 무능한 군대였다. 좀 두들기면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군대가 국민당의 노력과 항일 의지 덕분에 녹아내릴 때까지 버티고 싸우는 군대 수준으로 올라간 것이다. 변변찮은 저항 한번 안하고 적을 보자마자 적전도주 하는 것과, 전투중인 부대가 섬멸, 전멸당한다 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피해를 적에게 입히고, 그로 말미암아 후속 부대의 승리, 더 나아가 전쟁을 승리하게 만드는 것은 엄연히 군대의 수준을 가르는 명백한 차이다. 물론 숫자만 많지 기량이 엉망진창인 국민당군의 분투는 한계가 있었으며, 그나마 방어선을 꾸리면 자신의 기반에 집착하려는 군벌들이 적전도주하는 일이 너무 많았다. [[베이핑]]과 [[톈진]]의 손실만 해도 베이핑의 지배자인 [[쑹저위안]]이 베이핑 지배권에 집착하다가 망한 거고 이후 화북 지역의 싸움에서도 군벌들이 심심하면 적전도주를 하는 바람에 방어선이 무너져 잘 싸우던 전황을 말아먹은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이에 분개한 장제스가 적전도주를 일삼은 군벌 30여 명을 불러 모조리 총살해 버리기도 했다. 일본군과 싸우라고 [[팔로군]]에 넣어준 [[중국 공산당]]은 평형관과 백단대전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우기도 했지만[* 그나마도 백단대전 이후에 [[펑더화이]]는 마오쩌둥에게서 이 전투를 왜 벌였냐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대개는 같은 국민당 유격대를 공격하는 등 세력확장에만 몰두하여 4만 5천명[* 일단 이것은 편제상 숫자이며, 실제 숫자는 3만~8만으로 논란이 있다.]에 불과하던 세력을 전쟁 말에는 120만으로 불렸다.[* 이건 소련군의 만주 점령과 물자 지원이 가장 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